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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과 내면 돌보기-상처, 소통

by 럭셔리볼 2024. 1. 16.

신체에 상처가 생기면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이고, 심하면 병원에 가면 된다.

마음에 상처가 생기면 그대로 덮어두는 경우가 많다.

 

신체에 생긴 상처는 내비둬도 자연스럽게 나을 수 있지만,

마음에 생긴 상처는 내비두면 곪는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흉으로 남아 평생 내 살갗에 머물 수도 있고,

눈에 안 보이더라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어떨까,

 

모든 사람은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 기억이 오래 가는 사람,

털어버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

 

나는 차라리 상처의 기억이 오래 가는 사람이 낫다.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아무렇지 않게 살다가

한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더라.

 

어느 부분에 상처가 있는지, 

어느 부분이 취약한지 아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온거다.

 

어떤 상처든 응급처치하는게 좋긴 하지.

 

신체적인 상처, 외상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응급처치 하는 것만으로도

상당부분 치료가 된다.

 

마음에 생긴 상처도 마찬가지다.

스크레치가 생긴 순간, 즉시, 처리해주면

상당부분 치료가 된다.

 

어린 시절일수록 상처에 민감하며, 취약하다.

아이가 받은 상처는 주변 어른들이 다뤄줘야 한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이가 상처 받았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어린 시절을,

잃어버려서 일게다.

 

잊어버린거 말고.

잃어버린거.

 

분명 어린 시절에는 다양한 생각도 하고,

사소한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민감하게 입력됐을텐데

점점 자라면서 소위 '어른'이 되면서 '어린 아이'를 잃어버렸다.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은 내 어린 시절을 재경험 하는 것이다.' 

누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자녀를 양육하면서

어린시절의 기억,

기억은 없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

재미있게 했던 놀이,

등등

다양하게 떠오른다.

 

그런데 그마저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다.

 

모든 '어른'은 어린 시절을 반드시 거친다.

아무도 바로 '어른'으로 태어날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고 산다.

그냥 지나치면서 산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살면서 불쑥 튀어나온다는 사실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꿈처럼 아득하고 아지랑이 같은 그 기억이

순간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많은 경우 지나쳐버린다.

 

그 기억을 잡으면 어떻게 될까?

 

사실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일지 모른다.

많은 경우 용기가 없는 '어른'이라서. 

 

아니면 그 어린시절의 상처를 덮을 정도로

좋은 기억으로 가득하거나.

 

본인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상처가 많은 사람일수록 

'별 것 아닌 것'에 감정적으로 예민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한 방향으로 변해간다.

 

그래서 보통사람은 나이스하게 지나치는 일일지라도

나에게 예민하게 '툭'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내 상처와 깊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나이 먹을수록 점점 더 사람이 예전과 달리 변해가고 있다면,

과거 언젠가 받은 상처로 인함일거라.

 

그걸 인식하고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간다.

 

그것 말고도 신경쓸 일이 많아서.

먹고 살기 바빠서.

 

또 눈에 안보여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내 몸이 아파도, 상처가 나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한다.

 

심지어 상처가 나도, 피가 나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상처 얘기가 귀에 들릴까,

 

현대인들 중에는

눈에 보이는게 전부라고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현대사회라서 그런가 싶지만

가상세계에게 많은 걸 할 수 있는 시대다.

 

그저 외부세계와는 어떻게든 접촉하려고 애를 쓰는데,

자신의 내면세계와는 어떻게든 접촉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는만큼 보인다.

세상에서는 잘나가고 성공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내면도 보지 못해서

분명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이건 너무 슬픈 일이다.

 

10년 전에 '소통'이 화두에 오르고,

TV나 매스컴에서는 소통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교육, 강사들도 소통강사.

 

그런데 요즘 다시 '소통'이 유행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이 거리를 두고, 접촉하지 않아

소통의 부재가 생기고,

소통을 안해도 되는 일이 생기고,

만나지 않아도 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제 코로나19는 종식되었고, 다시 사람들이 만나게 되었다.

 

사람과 사람은 만나면 무엇이 되는줄 아는가?

갈등의 시작이다.

그래서 10년만에 '소통'이 재유행하기 시작했다.

 

내 내면의 반응을 알아차리고 

내 내면과 소통을 잘 하는 사람이

타인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