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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몸의 일부분 - 몸, 마음 돌보기

by 럭셔리볼 2024. 1. 19.

힘든 일들이 계속 연속될 때,

해야 할 일들이 밀려올 때,

잠이 부족할 때,

예측 못한 일들이 생겨날 때,

아무도 뭐라한 적 없지만 움츠려들 때,

 

겪어보지 않았던 일들을 겪으며

마음은 힘에 부친다.

 

견디면 될 줄 알고,

일을 해내면 해결 될 줄 알았지,

주말에 몰아자면 될 줄 알고,

해결하면 아무 문제 없을 줄 알았다.

 

몸은 힘이 들 때 버티는 힘이 강하다.

잠을 참을 수도,

배고픔을 참을 수도,

아픔을 참을 수도 있지만

 

마음은 그에 비해 견디는 힘이 약하다.

 

물론 장기간 잠을 자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먹지 못하고,

심할 정도로 아프면 더이상 버티는 것은 불가하다.

 

하지만 마음은 힘들 때 다른 곳으로 도피할 수 있다.

몸을 가볍게 흔드는 것부터

게임, 음주, 도박, 도벽, 등

힘든 마음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무언가로 도망가는 것만 보아도

견디는 힘이 약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의 힘듦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차곡차곡 쌓이는 중이다.

눈 앞에 산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게 급급해 마음을 돌볼겨를이 없다.

아니 마음을 돌본다는 것 자체를 모른다.

 

아둥바둥 살다가

몸이 아프게 되면,

몸을 다치게 되면,

눈물이 날 수도 있다.

머리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눈물이 연신 흐른다.

 

그도 그럴것이 머리로 상황과 문제들을 통제하면서 지내지 않았나.

마음은 힘들면 안 된다고 다그치기만 했으니까

머리는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흐른다.

그것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

'마음'과 '몸'은 연결되어 있다.

 

'몸'이 힘드니 이제 더이상 컨트롤 하던 기능이 약해졌다.

이 때다 싶어 '마음'이 터져나온다.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밀려나온다.

 

먼저 아프고 다친 마음을 돌봐주어야 한다.

치료를 받고, 약을 쓰고, 상처를 치료한다.

그리고

마음을 돌봐주어야 한다.

 

몸은 누가봐도 아프다는게 보이고,

몇 가지 검사를 통해 병명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아 어떻게 돌봐줘야 하는지 모른다.

이게 마음 돌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데,

 

사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고가 나는 것과 똑같다.

마음이 다칠 때,

마음이 상할 때,

많은 경우 자신만의 응급처치를 하거나 혹은 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마음은 몸과 다르게 자연적으로 회복되는 일이 없다.

그대로 두면 상처난 상태 그대로 멈춰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는 곪고, 썩고, 악취가 나기도 한다.

그리고 점점 다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예가 트라우마다.

트라우마 사건 하나만 발생하더라도 그 파급력은 엄청난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영향력도 어마어마하다.

트라우마 사건과 비슷한 것과 연결되는데,

살면서 종종 비슷한 그것과 접촉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 빈도수는 사람마다 다르다.

 

치료 방법은 마음 돌보기에 있다.

몸을 돌보듯이 마음을 돌봐야 한다.

몸의 경우 타인에 의해 돌봄 받는 일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은 타인에 의해 돌봄 받는 일 반, 내가 돌봐줘야 하는 것 반이다.

 

내가 내 마음을 돌보기로 마음 먹지 않는다면,

그 효과는 별로 없다.

 

몸은 내가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타인에 의해 돌봄 받으면서 시간이 지나면 나을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은 상당부분 나에게 달려있다.

 

그건 방법을 몰라서 그렇지,

알면 쉽다.

 

우선 그 당시 내 마음이 어떻게 느꼈을 지

단어를 찾아 헤아려준다.

그렇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몸과 마음이 다치는 그 수간을 떠올리며,

위로해주는 과정을 하고나면,

마음이 말을 할 수도 있다.

그 소리에 귀 기울이자.

내가 이제까지 평생을 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말일 수도 있고,

그것이 상한마음을 치유하는데 단서가 될 수 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이 위로받는다면,

마음은 안심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마음이 다쳤을 때 '내'가 지금의 '나'에게.

바로 내면아이다.

 

내 안에 성장하지 못하고,

상처로 인해 고착되어 있는 바로 그.

내면아이.

 

이 과정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거나

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용기가 많이 필요한 '작업'일 수 있다.

 

그러나 명심하자.

'내'가 용기를 내면,

'내면아이'도 용기를 내어 준다는 것을.